다음달 10일(목)은 6월 민주항쟁을 34년째 맞이하는 날이다. 본교에서도 고조된 민주화 투쟁 열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민주주의에 한 획을 그은 6월 민주항쟁은 오늘도 선명한 궤적으로 남아 내일을 준비하는 동력의 밑절미가 되고 있다. 본교의 역사인 6월의 그날을 당시 본지의 기록으로 더듬어 본다. 민주화를 향한 의지와 열망을 되새기며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일상에서의 민주화를 향해 나아가보자.
1987년 2월 18일 제481호 1면 기사
박종철 군 추모 집회 열려
-23일, 영정 들고 교내 침묵시위
-신당동 중앙시장서 가두시위도
박종철 열사 추모와 XX 정권 타도를 위한 학생집회가 지난 1월 27일 오후 1시 중앙도서관 앞에서 강필수(경영·3·휴학) 군의 주도로 열렸다. 1백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박종철 열사에 대한 묵념과 유인물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된 이 날 집회에서 강군은 『고문반대투쟁은 결코 추도·애도의 차원이 아닌 고문을 본질로 하고있는 파쇼 XX 타도 투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후 1시 30분경 1백여 명의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 「박종철을 살려내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내를 두 바퀴 돈 뒤 정문에서 경찰과 10여 분간 대치했다.
한편 「살인정권타도와 고문추방」을 위한 기습가두시위가 지난 1월 23일 오후 1시 신당동 중앙시장 앞길에서 열렸다. 우리 학교 학생 50여 명을 비롯한 서울 남부지역 평의회 6개 대학생 2백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벌어진 이 날 가두시위는 박종철 열사에 대한 묵념, 유인물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1987년 8월 3일 제491호 7면 기사
「민주화」의 함성으로 타올랐던 6월
현 정권의 장기집권 의도에 맞서 전 숭실인이 하나가 돼 싸웠던 6월은 민족숭실의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새삼 확인시켜준 의미 있는 한 달이었다. 근 보름 동안 시험 거부와 함께 학내시위·가두시위·학생회관 철농 등으로 많은 숭실인들은 민주화 투쟁의 장으로 집결하였고, 또한 연일 계속되는 시위로 학교 당국은 6월 17일 조기 방학을 선언, 1학기 성적처리를 중간고사와 리포트로 대치토록 했다. 6·10투쟁은 분명 숭실 학생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략)
「군사파쇼의 완전한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가 민족민주전선 건설투쟁위원회(이하 전선투), 민족민주투쟁위원회(이하 민민투) 주최로 오후 1시 30분 도서관 앞 민주계단에서 열렸다.
강필수(경영·3·휴학) 전선투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행사는 전선투, 민민투의 각기입장표명, 일반 학생들의 현 시국에 대한 견해발표, 6·10 국민총궐기대회에 관한 성명서 낭독, 실천대회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