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토)은 한글날이다. 그러나 한글날을 마냥 반길 수는 없다. 한글로 쓰인 글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른바 ‘문해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본 기자는 우리나라 국민의 문해력의 저하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며 왜 문해력이 필요한지, 문해력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를 짚어보았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문해력
지난 6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융통성이 없다는 뜻으로 ‘고지식하다’고 지적했으나, 해당 학생은 이를 칭찬으로 받아들이면서 세간에 큰 화제를 모았다. 고지식을 ‘지식이 높다’고 이해한 것이었다. 또한 지난해에는 정부가 8월 17일(월)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사흘간 연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발행됐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3일을 뜻하는 ‘사흘’과 4일을 뜻하는 ‘나흘’을 혼동하여 “사흘이라는 표현이 어렵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사흘’이 1위에 올랐다. 그동안 사흘이라는 단어는 그동안 50만 건 이상의 기사에서 사용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그 뜻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오래전부터 문해력 저하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학생 문해력의 필요성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을 수 있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문해력이란 ‘현대 사회에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반면 유네스코는 더욱 포괄적으로 ‘다양한 맥락과 연관된 인쇄 및 필기 자료를 활용하여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며, 해석과 창작, 소통과 계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문해력이 낮은 것과 문맹은 다르다. 문맹은 글을 읽거나 쓰는 활동 자체를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58년 문맹퇴치운동 이후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2007년 이후 1%대에 머물렀다. 따라서 오늘날 거의 모든 국민은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
그러나 문해력이 낮으면 단순한 한글 읽기와 쓰기만을 요구하는 일상생활 수준을 넘어 더욱 복잡한 지식을 습득하거나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한국사고와표현학회’의 강원대 이진남 교수는 ‘문해력은 정치와 경제, 과학기술을 포함한 개인의 삶을 포함한 대인관계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요구되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대학생에게 문해력은 필수적이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대학은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기관이다. 대학의 학생이 그러한 고등 지식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충분한 문해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본교 국어국문학과 오충연 교수는 “대학생은 이해와 논증, 추론 등의 고차원적인 사고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전공을 공부한다”며 “낮은 문해력은 전공 텍스트와 멀어져 학습 의욕 저하와 함께 학업능력의 미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성인 문해력 실태 심각
기초 문해력 미달 성인 ‘200만 명’
이렇게 중요한 문해력에 대한 우리의 실태는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문해력이 부족한 국민은 많다. 지난 2008년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결과,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현격히 부족해 ‘일상생활에서 남의 도움이 필요한 성인’은 약 200만 명(약 5.3%)으로 집계됐다. 이에 한국교육개발원은 국민 기초능력 향상을 위해 ‘성인 문해교육 지원사업’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으나, 10년이 넘도록 개선되지 못했다. 지난달 7일(화),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어려운 성인이 약 4.5%(약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강대중 원장은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기초문해가 필요한 성인 인구가 상당한 규모”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성인 문해력 부족은 실생활에서도 문제로 나타났다. 지난해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에서 기업 191개를 조사한 결과 108개(약 56.6%) 기업에서 젊은 세대의 국어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일부 기업에서는 “보고서나 기획안 등 문서 작성 능력이 부족해, 구두 보고나 이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했고, 심지어는 “수신과 발신, 참조 등의 단어조차 몰랐던 사원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2016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의약품 설명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 이해가 매우 취약한 수준’의 비율은 38% 였다. 해당 조사에서 △미국: 23.7% △핀란드: 12.6% △스웨덴: 6.2%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조사에 참여한 경제 협력 개발 기구 소속 20개국 중 우리나라는 19위를 기록해 하위권에 머물렀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교육방송공사 특별기획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 제작팀에서 성인 남녀 883명을 대상으로 유사한 실험을 진행했다. 복약 설명서, 주택임대차 계약서 등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글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성인 문해력 실험 결과, 이들의 평균 정답률은 55%에 불과했다.
학생 문해력도 추락 중
우리나라의 성인 문해력이 떨어짐과 함께 학생 문해력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교육방송공사에서 중학교 3학년 학생 2천 4백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문해력 시험 결과에 따르면, 중학교 3학년 학생의 27%는 교과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 중 11%는 초등학생 이하 수준의 문해력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청주교대 엄훈 문해력지원센터장은 “지난 2019년 입학한 초등학교 학생의 20%는 문해력이 낮은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국제적인 수준에서 비교해보았을 때도 우리나라 학생들의 문해력 측정치는 낮아지고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소속된 79개국의 만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3년마다 △읽기 △수학 △과학 영역의 성취 수준을 평가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이하 학업 평가)’ 결과를 통해 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읽기 점수’ 추이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6년 학업 평가 결과 읽기 점수는 556점으로 전 세계 1등 수준이었지만 △2009년 539점 △2012년 536점 △2015년 517점 △2018년 514점까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특히 기초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읽기 기초수준에 미달하는 학생 비율은 △2012년 7.6% △2015년 13.6% △2018년 15.1%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06년 읽기 기초수준 미달 학생들이 단 5.7%였던 것에 비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2015년에 비해 수학과 과학 영역에서는 기초수준 미달 학생들이 모두 줄어든 것과는 상반된 결과이다.
이러한 결과는 ‘읽기 태도’ 항목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학업 평가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은 ‘읽기 능력 인지’와 ‘읽기 어려움 인지’ 지표를 통해 평균적으로 “스스로 유능한 독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읽기와 관련한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고 답했다.
어휘력이 문해력의 핵심이지만…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어휘력을 향상시키는 방법도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어휘력이 부족해 문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본지에 등록금심의위원회를 해설한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는데, 해당 학생은 “심의라는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해 문장해석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지 본교에만 한정된 사례가 아니다. 서울여대 학보사 서울여대신문 조유진 편집국장은 “상호호혜적이라는 단어가 독자들이 알아듣기 어려워 수정하라는 지적을 받았던 바 있다”고 전했다. 또한 성공회대 신문 성공회대학보사 신다인 편집장은 “하청 업체 청소노동자들이 해고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기사에서 원청과 하청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학생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인하대 국어교육과 신명선 교수는 “문해력의 핵심은 어휘이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어휘 교육에 방점을 두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해력 향상 위해 독서해야 하지만,
책에서 손 놓는 현실
이러한 어휘력과 함께 문해력이 추락하는 이유가 독서량 감소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다양한 읽을거리를 통해 문해력을 높여야 하지만, 독서량이 부족해 문해력이 저하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이하 독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독서량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성인 6천 명을 대상으로 독서 조사를 실시한 결과 △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를 제외한 일반도서(△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을 모두 포함)를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약 45%에 달했다. 오디오북을 제외한 종이책과 전자책을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성인도 △2011년 26.3% △2015년 32.6% △2019년 44.6%로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특히 종이책으로 한정한다면 그 증가세는 더욱 뚜렷했다. 1년간 종이책을 1권도 채 읽지 않는 사람의 비율은 지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6년간 19.3%나 늘었다. 1994년부터 2013년까지 지난 20년간 종이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15.4%밖에 늘지 않았다는 것과 비교하면 최근 6년간 종이책의 수요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이다.
대학생 독서율도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조사한 ‘전국 대학 도서관 통계조사’에 따르면, 재학생 1인당 대출 책(종이책과 전자책을 포함) 수는 2011년 8.3권에서 2020년에는 4.0권까지 줄어들었다. 본교에서도 중앙도서관 재학생 1인당 대출 책 수(종이책)는 △2011년 12.6권 △2014년 11.5권 △2017년 8.9권 △2020년 5.5권으로 전국 평균과 유사하게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교과서가 아닌 다양한 읽기 자료를 접하지 않아 왔던 학생들의 문제는 이미 예견되던 현실이다. 지난 2018년 학업 평가 결과 중, 학교 밖에서 읽기 경험을 측정하는 ‘다양한 자료 읽기 활동 비율’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당시 우리나라 학생들의 신문과 잡지 읽기 등 읽기자료 독서 비율은 33.3%로 산출됐으며, 이는 경제 협력 개발 기구 소속 국가 평균 43.9%에 비해 10% 이상 낮은 수치였다.
따라서 다양한 읽기 자료를 접하고, 독서량을 늘려 문해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 교수는 “종합적이고 넓은 체계의 사유를 할 수 있도록 긴 시간을 들여야 할 서적을 권한다”고 말했다. 김종원 인문교육전문가는 “문해력의 본질은 독서에 있다”며 “책에 서술된 사실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 문해력을 능동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위드 디지털로 문해 교육 변화해야
독서량과 함께 문해력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다양한 디지털 매체 유입이 주원인으로 꼽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가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3%의 교사들이 학생들의 문해력이 하락은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김성우 응용언어학자는 “다양한 읽을거리를 통해 문자 기반 문해력을 키우기 이전에 새로운 미디어가 주어지고 익숙해진 상황에서, 이들에게 일종의 신세계가 열린 것”이라며 “단순히 이러한 미디어를 수용하는 학생들의 잘못으로만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기존의 교육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인권연구소 창 엄기호 연구활동가는 “시험을 위한 읽기에서, 읽기를 돕는 시험으로 우리나라의 평가체제가 변화해야 한다”며 “개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치부할 것이 아닌, 멀티미디어 시대에서 텍스트 교육의 역사를 성찰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교총은 “미국의 읽기 우선 교육, 뉴질랜드 문해력 교육 등 선진국이 보여주는 문해력 교육에 대한 관심과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본받아야 한다”고 논평했다.
자문 오충연 교수(국어국문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