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팬데믹 이후 교육분야에서는 ‘EduTech(에듀테크)’라는 용어가 대유행어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용어를 1980년대 후반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미국 대학의 학과이름에서 처음으로 접했다. 그리고 1990년 석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수강한 교과목명이 『Introduction to Educational Technology(ET)』였고, 주교재가 사진으로 보고 있는 <Instructional Technology: A systematic approach to education, Knirk & Gustafson, 1986>. 우리나라에서는 ET라는 학문분야 용어가 1980년대 후반에 도입되었고, ‘교육공학’으로 번역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번역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교육테크놀로지’로 번역하여 박사과정 교과목에 사용하고, 학부에서도 강의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그 이유는 ‘공학(工學)’이라는 용어가 주는 선입견 혹은 어감 때문에 이 학문분야에 대한 오해나 접근성 등이 많이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행어가 된 ‘에듀테크’도 굳이 번역하지 않고 영문을 그대로 한글화 한 것은 이런 이유도 일부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이 책은 11년 동안의 현장교사 경험을 갖고 동료 한국유학생들에 비해 꽤 많은 나이에 유학을 갔던 나의 첫학기, 첫강좌에 사용된 교재였다. 저자는 훗날 나의 박사논문을 지도해 주신 F. Knirk 교수님이고, 강의는 석사논문을 지도해 주신 E. Kazlauskas 교수님이 해주셨다. 당시 장학금을 받지 못한 석사과정 고학생 시절이라 중고책(used-book)을 서점에서 구입했는데, 사진에 보듯이 표지에 이상한 흔적이 남아있고 깨끗하지 못하다. 그래두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한 날 메모를 남겼다. 게다가 전공과목에서는 유일하게 수강한 과목이라 교재의 내용을 수능영어 공부하듯이 한 문장씩 꼼꼼하게 읽어본 이 교재의 내용은 나에게 거의 충격에 가깝게 다가왔다. 그 내용들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중에 내 강의를 수강하는 평생교육학과 학부나 대학원생들은 익숙한 ‘구체적 학습목표 진술을 위한 [ABCD] 모형’도 이 때 배운 내용이다. 이 [ABCD] 모형은 그 학기 중 다른 영어과목의 발표내용으로도 활용되어, 내 육성으로 카세트 테이프 앞뒤면으로 녹음해서 2주 동안 등하교하는 차안에서, 그리고 집에서도 열심히 들어가며 스크립트를 완벽하게 외워서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책을 ‘내 인생의 책’으로 선정할 때 주저하지 않은 이유는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나의 학문적 방향을 결정하도록 한 이유를 이 책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유학가기 전 11년 동안의 교직생활에서 풀리지 않았던 학생들의 이상한, 그리고 다양한 모습들에 대한 궁금증이 이 책에서 소개한 ‘학습자 특성(learners’ characteristics/profile)’ 부분에서 대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내용은 ‘교수학습 활동에서의 디자인(instructional design)’이라는 표현이었다. 당시에 한국에서는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유명한 남성 패션디자이너가 즐겨 쓰던 프랑스식 발음만 익숙하게 들어왔던 터라, 나로서는 강한 호기심이 생기고 이상한 느낌마저 들게 했던 내용이다. 훗날 귀국 후에, 이 용어가 우리 말로 ‘교수설계’라는 내용으로 번역되어 ‘교육공학’ 관련 과목에서 교육되고 있는 것을 보고 다소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디자인’과 ‘설계’의 용어적 어감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교수설계’라는 용어는 역시 공학적, 기계적 어감이 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 하나의 강한 영향을 받은 내용은 ‘교육테크놀로지스트(educational technologist)는 교육디자이너(educational/instructional designer)와 동의어로서 교사(교수자)가 이런 능력을 갖출 때 가장 효과적으로 학습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교육에도 패션예술처럼 디자인과 같은 창의적 기획이 가능하다니~! 교육테크놀로지는 단순한 미디어나 도구의 활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학습활동의 디자인, 계발/개발(development), 활용, 평가, 확산(diffusion) 등에 관한 노하우(how-to)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지금도 나의 강의 계획부터 진행, 평가 및 후속 활동과 연구개발 활동에 항상 함께 이루어가는 생각이다. 지금도 교육테크놀로지나 학습디자인 이라는 용어를 들으면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게다가, 평생교육, 평생학습과 이런 활동이 융복합(convergent)된 이후 그 두근거림은 더욱 더 커져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