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당선작

  나는 개입니다. 개치고는 달변가에 속하죠. 혹시라도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말을 떠올리신다면, 큰 오해입니다. 주인들이 내게 하는 말들을 곧이곧대로 따라 했다면 나는 바보가 되었겠죠. 놀랍게도 나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할 줄 알았고 인간의 언어를 이해했습니다. 분명 신이라는 작자가 깜빡하고 전생의 기억을 덜 지운 거겠죠. 그게 아니라면 아비인 스피츠와 어미인 몰티즈의 유전자 결합 간에 큰 오산이 있던 모양입니다. 어찌 됐건 나는 어미의 품에서 나오자마자 눈을 떴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른쪽 눈이었죠. 왼쪽 눈은 평생 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곤 눈앞에 기진맥진한 몰티즈에게 한 마디를 건넸죠. 배고파, 라고. 어미는 기겁했습니다. 애꾸눈에다가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다니. 어미는 앞다리로 나를 굴려 개집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여린 살갗에 거친 흙이 닿자 무척 따가웠습니다. 때는 4월이었고 하늘은 누런색이었죠. 세상에 대한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아비는 집에 들어오는 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와서도 남은 사료를 먹고는 가버렸죠. 어미는 그놈이 잘하는 건 담 넘는 것밖에 없었다 하며 한탄을 했습니다. 내 형제자매들은 총 다섯 마리였는데 그중 나 같은 녀석은 없었습니다. 정신 사나울 정도로 활동적인, 정말이지 개다운 녀석들이었죠. 어미는 나를 대놓고 미워했습니다. 고만고만하게 생긴 것 중에서도 애꾸눈은 눈에 띄었는지 내가 젖을 빨려오면 앞발로 퉁 차곤 했습니다. 슬프게도 어미가 자고 있을 때 몰래 젖을 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집에는 개들 말고도 늙은 남자가 한 명 살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주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가 우리에게 하는 일이라고는 밥(대부분 흙냄새가 나는 사료였고 간혹 삶은 감자나 고구마가 나왔습니다)을 주고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주인이라기보다 사육사에 가까웠죠. 어찌 됐건 내 견생(犬生)의 첫 번째 인간이 나를 보자마자 한 것은 목에 번호표를 단 것이었습니다. 이놈은 오래 못 살겠군. 남자는 내 몸을 조몰락거리고 왼쪽 눈까풀을 만지더니 불길한 저주를 내렸습니다. 나는 6번이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우리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강아지들의 목덜미를 잡아 올린 뒤 온몸 구석구석을 만지작거렸는데 손이 아주 거칠고 냄새가 고약해서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미에겐 배척당하고 어린 혈육들은 말도 못 하는 상태라 나는 그 시간 동안이라도 인간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늘 점심은 감자인가요? 그는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대신 닥치라며 주둥이를 꼬집는 것으로 응수했습니다. 나는 헛된 기대를 품으며 그 짓을 몇 번 반복했지만 갓 태어난 핏덩이에게도 거칠기 짝이 없는 놈의 태도에 신물이 나버렸죠. 그때 인간이란 것들은 제 말만 하고 들을 줄은 모르는 것들이라는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6번으로서의 삶은 가혹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조금씩 자라자 이제 그들에게도 걷어차이기 시작했습니다. 개집에서 편하게 누울 수 없는 것은 물론 밥도 남은 것을 먹어야 했습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대들려 하면 귀를 물어뜯기거나 앞발로 머리를 맞아야 했습니다. 나는 다른 녀석의 몸집에 반 밖에 안 되어서 당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어미 개 한 마리와 다섯 똥강아지가 오순도순 뭉쳐 사는 개집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죠.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혈육들과 척을 지자 나는 봄 내음이 가득한 마당에서 대화상대를 찾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나비나 사마귀, 메뚜기 같은 녀석들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두더지라는 녀석들은 말이 조금 통하려 하면 굴을 파고 사라졌죠. 나도 따라서 굴을 파려 했지만 마당을 어지럽힌다며 늙은 남자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말았습니다. 또 참새라는 것들은 아침마다 지붕 위에서 떠들어댔는데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대화에 낄 수가 없었죠. 가끔 담장의 좁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길고양이 세 마리와는 그나마 대화가 통했습니다. 그들을 잠시나마 동경했습니다. 남의 집 음식물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동경하진 않았지만, 길고양이들이 가진 자유란 실로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의 명령도 없이 자신이 먹을 것, 잘 곳, 갈 곳을 정할 수 있다니. 어느 밤, 나는 그들을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길고양이들은 서로를 마주 보더니 나를 코웃음을 쳤습니다. 인간한테 발발 기는 녀석이랑 뭘 한다고? 앞마당이나 잘 지켜라, 애꾸눈. 이마에 상처가 난 고양이는 내게 이름을 물어봤습니다. 6번이라. 인간이 지어준 이름이군. 개들은 거기에 평생을 매달려 살지. 그 이름을 불러주는 주인이 사라지면 죽을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그 이름이 진짜 너일까? 어찌 됐건 너희한텐 그게 어울려. 우린 이름 따위 없지만. 고양이들이 비웃으며 사라졌습니다. 참으로 건방진 족속들이었습니다.

  나는 주로 마루 밑 그늘에 엎드려서 삶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생후 한 달 된 강아지치고는 기특한 생각이죠. 그래서 내린 결론은 개답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복종이니 애교니 하는 것은 사실 다 인간을 위한 행위잖아. 남을 위해 살고 싶진 않아. 나는 주인에게 덜 사랑을 받더라도 자신을 위해 살다 죽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매미라는 녀석들이 나무 위로 올라가 죽겠다고 소리를 지를 무렵, 마당으로 검은 차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어지러운 무늬의 옷을 입은 중년 남성과 머리를 새집 같이 볶은 중년 여성이 내렸고, 그들은 내 혈육들을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날도 몇 발자국 떨어져서 물끄러미 인간들을 쳐다보았죠. 강아지들을 마구잡이로 집었다 내려놓는 것이 늙은 남자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나는 개답지 않은 자세로 대야에 엉덩이를 걸쳐 앉아 혀를 찼습니다. 그때 조그마한 그림자가 대야를 감쌌습니다. 어린 남자아이였습니다.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거참 못생긴 얼굴이군. 꼬마는 늙은 남자가 주는 울퉁불퉁한 감자와 닮았었습니다. 녀석은 나를 감싸 들어 올리더니 덧니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말했습니다. 친구들이랑 싸웠니? 티 없이 맑은 눈망울에 내가 비쳐 보였습니다. 꽤 개다운 표정을 하고 있더군요.

 

  내 첫 이름은 가루였습니다. 뭔 놈의 개 이름이 가루인가 하니 감자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이름이었습니다. 푸른 줄무늬가 있는 하얀 늑대였죠. 녀석의 목표는 그 늑대처럼 나를 키워서 타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통통한 엉덩이를 내 등에 비비고는 했습니다.

  감자의 집은 서울 외곽의 아파트단지에 있었습니다. 마당보다는 약간 큰 집이었지만 내가 활동할 수 있는 곳은 개집 절반 크기의 케이지 안이었죠. 부엌과 거실 사이에 놓인 케이지는 바닥마저도 철창으로 이루어진 형태로, 자고 일어나면 철창에 눌려 온몸에 통증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배변을 배출하는 장소와 잠을 자는 장소가 일치한다는 것은 상당한 불편함을 만들었습니다. 우선 그것들의 잔해와 닿지 않기 위해 철창 사이로 정밀한 조준을 해야만 했습니다. 시선을 조금 내리면 내 몸에서 나왔던 것들과 눈이 마주쳤고, 심지어 그것을 잘 치워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떨 때는 변과 함께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인간이란 것들은 도무지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구나. 내 저녁시간을 잊은 채 드라마에 몰두하는 감자부인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 집의 인간은 총 세 명이었습니다. 감자, 감자부인, 감자사장. 감자사장은 자신이 사장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습니다. 그 인간은 주로 진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밤에 들어왔는데 나와 말이 통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끊임없이 자기 얘기를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 네 개 껌 값 버느라고 개고생했단 말이야. 이놈아. 케이지를 툭툭 차대는 그의 발은 몹시도 갈라진데다가 털이 듬성듬성 나있어 병든 짐승 같았습니다. 그는 자기할 말을 마치고 꼭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이마에 입술을 들이박았습니다. 여러모로 끔찍한 광경이었기에 나는 오른쪽 눈마저 감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루야, 아빠가 사랑해. 사랑이라니. 나는 인간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개를 이런 감옥에 가둬놓다니. 내가 아는 사랑의 뜻에 대해 의심해야 했습니다. 감자사장은 감자부인이 집에 늦게 들어왔다 구박을 할 때만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감자사장에게는 다른 여자의 냄새가 아주 많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 말에 일말의 대꾸도 하지 않는 감자부인은 생판 모르는 TV 속의 남자 배우를 보며 사랑한다 했습니다. 그러니 둘을 보고 자란 어린 감자가 사랑해라는 말을 알 턱이 있겠습니까? 언젠가 감자가 내게 사랑한다 했을 때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는 것으로 대꾸했습니다. 그때 나는 사랑해라는 말을 지나가는 돈벌레 따위에게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기야 낳아준 부모에게도 사랑을 못 받았는데 내가 사랑에 대해서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나는 하루에 21시간 정도를 좁은 케이지에서 지냈습니다. 부엌에서는 군침 나는 냄새가 진동하고 거실 TV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도 누워있거나 물을 마시는 것, 그리고 케이지 맞은편에 놓인 마리아상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개 주제에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리아상은 내게 퍽 위로가 되어줬습니다. 무슨 말이든 들어줄 것 같은 표정이라 나는 마리아상에 낑낑거리며 이야기를 하곤 했죠. 물론 대답은 없었지만 지루함을 견디는 데에는 도움을 줬습니다. 나머지 세 시간 중 두 시간 반은 감자와 노는 시간이었습니다. 학교를 다녀온 녀석은 나를 꺼내어 자기 방에다 내려주었습니다. 창문 너머로 햇볕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그 방에는 늘 장난감들이 산만하게 퍼져있었죠. 내가 맡은 역할은 감자의 호위병이었습니다. 감자 왕국(실제로는 태호 킹덤, , 이런 식의 이름이었을 겁니다)을 공격하는 장난감 병정, 스테고사우루스, 테니스공, 가정통신문 뭉치들을 물어뜯고 발로 뭉개는 역할이었죠. 감자는 최측근인 곰 인형과 함께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유치한 대사를 뱉었습니다. 놀랍게도 재밌었습니다. 폭력이 허용되는 유일한 시간인지라 나는 장난감들을 괴롭히며 그 시간을 즐겼습니다. 다만 곰 인형은 같은 편이라서 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죠. 두 시간 반이 지나면 감자 부인은 어김없이 나를 케이지로 데려갔습니다. 감자가 애걸복걸해도 부인은 단호했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감자는 종종 케이지 앞에 엎드려 얼굴을 들이댔습니다. 녀석은 그 집에서 나와 유일하게 눈을 맞추는 인간이었습니다. 매니큐어를 바른 발이나 털이 듬성듬성 나있는 발이 아닌, 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습니다. 어찌됐건 녀석은 철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나를 긁어주기도 하고 종이컵 마술을 보여주기도 하고 선생님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자식 완전 바보 아니야? 녀석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어쩌면 녀석이야말로 개로 태어날 운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녀석을 보고 꼬리를 흔들려다가도 겨우 참았습니다.

  남은 삼십 분은 산책하러 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평일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감자 부인은 목줄을 채워 나를 밖으로 끌고 갔습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개인지라 몸이 근질근질하더군요. 슬프게도 감자 부인의 걸음걸이는 굼벵이 같았기 때문에(걷는다기보다 슬리퍼로 바닥을 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산책은 운동보다는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 떨기를 위한 수단으로 보였습니다) 속도를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뛸 수 없는 게 답답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시간이었습니다. 그야 다른 개들을 마주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니까요. 대부분 조증 환자 같은 녀석들이었습니다만, 저마다의 덜떨어진 모습(인간처럼 눈썹을 그린 시츄라든지, 살이 쪄서 엉덩이를 뒤뚱거리는 웰시코기라든지)이 나름대로 눈요기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비록 좁은 곳에 21시간 동안 갇혀있을지라도 버틸만한 생활이었습니다. 딱히 주인들을 위한 개다운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감자사장은 나를 훈련하려 했지만, 일부러 명령을 못 알아듣는 체했습니다. 그가 앉아, 하면 꿋꿋이 서 있었고 손, 하면 바닥에 누워버렸습니다. 물론 그의 손에 있는 개껌이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한번 명령을 듣는 순간 내가 사라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에이, 멍청한 놈. 나는 나를 위해 산책하고 나를 위해 장난감을 공격했습니다. 주인들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었습니다.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그 집에 들어간 지 반년이 되던 겨울이었습니다. 감자사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나를 꺼내 안았습니다. 그는 쓸데없이 말은 자주 걸어도 산책은 귀찮다며 나가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몇 시간 후, 내 고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빠, 김가루 불쌍해. 에이, 쓸 일 없는 건 버리는 게 나아. 다 가루를 위한 거란다. 물론 지금 생각해봤을 때 그 말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습니다. 감자의 집에서 평생을 산다는 가정 하에 고환은 감자 부인의 맞지도 않는 옷들처럼 쓸데없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당시의 혈기왕성한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깔때기를 목에 쓴 채 맹렬하게 짖어댔습니다. 짧은 견생을 살며 배운 욕을 모두 동원했지만 역시 개의 성대인지라 온전하게 전달은 되지 않았습니다. 어찌 됐건 기분을 나쁘게 하는 건 성공했는지 감자사장이 신문지를 말아서 철창 사이로 나를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돌돌 만 신문지가 코를 찌르려 하자 그것을 물어서 잡아당겼습니다. 그리고 갈가리 찢어버렸습니다. 철창 밑 노란 소변 위로 신문지 조각들이 떨어졌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쓸 일 없는 물건은 버리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런데 수술이 끝나고 얼마 후부터 집에서는 쓸 일 있는 물건들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오븐이 사라지더니 토스터기가 사라지고 다음에는 컴퓨터가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집에서 가장 쓸모 있는(내게 그리 관심은 없었지만, 어찌 됐건 변을 치우고 밥을 챙겨주고 산책을 시켜주는 사람은 그녀였습니다) 인간인 감자 부인도 한나절 동안은 사라졌었습니다. 그녀는 밤이 되어서야 기진맥진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감자사장도 거의 사라진 듯했으나 알고 보니 방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지러운 무늬의 셔츠 대신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고 안방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사라진 물건들 대신 새로운 물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새로운 물건이라는 것은 대부분 종이로 구성되어있었는데 경마 잡지와 복권이라 불리는 것이었죠.

  감자사장과 감자부인이 둘 다 집 안에 있을 때는 종종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물건들은 사납게 날아다니다 가끔은 케이지에 부딪혔습니다. 마리아상도 내 눈앞에서 산산조각이 났죠. 집안이 시끄러워질 때면 감자가 나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나를 숨 막히게 껴안았습니다. 괜찮아, 김가루. 형아가 있잖아. 감자는 풍선 같은 얼굴에 비해 몸은 비쩍 마른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포근함이 느껴졌습니다.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가 잦아들고 감자의 심장 소리가 고요하게 들렸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감았는데, 평생 깜깜하던 왼쪽 눈에는 무언가 흐릿한 형상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어린 나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였습니다.

  계속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오른쪽 눈을 살짝 떴을 때 베개 맡에 놓인 곰 인형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섬뜩했습니다. 감자의 방에서도 점점 장난감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장난감 병정, 공룡들, 결국에는 아끼던 장난감 칼마저 사라졌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나와 곰 인형뿐이었죠. 인형은 단추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다음은 너야.

 

  감자사장이 주정뱅이가 된 이후로 이 집안의 물건들은 크게 두 가지 양상을 보였습니다. 장난감처럼 사라지거나 마리아 상처럼 박살이 났죠.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되겠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분풀이 대상로 찍혀 만신창이가 되는 것도 두려운 일이지만 버려지는 것 또한 만만치 않게 섬뜩한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TV에서 고속도로 위에서 버려진 개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그 개들의 운명은 굶어죽거나 차에 치어죽거나 개장수에게 팔려 개고기가 되는 것 중 하나였죠. 그들에게 자유란 마냥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나에겐 이 집을 떠나서 안 될 이유가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 집의 무엇인가가 나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개라는 종족의 망할 본성일지도 모르겠지만.

  TV는 집안의 물건들 중 드물게 멀쩡했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도 감자가족들이 애용했습니다. 그것은 거의 하루 종일 켜져 있었는데, 오전에서 오후까지는 감자사장이, 저녁에는 감자가, 새벽까지는 감자부인이 이용했습니다. 이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는 TV같은 존재가 되어야 했습니다. 감자가족의 시선을 하루 종일 붙잡을 수 있는 존재가 말이죠. 그것을 위해 내가 터득해야하는 것은, 바로 애교였습니다. 당신들은 아마 내가 일전에 했던 다짐을 지적하겠죠. 오해하지 마십쇼. 인간을 사랑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애교였습니다.

  시작은 꼬리 흔들기였습니다. 인간들의 시야범위에 들어온 순간 나는 엉덩이를 높게 치켜들었습니다. 그리고 좌우로 요란하게 꼬리를 흔들어댔죠. 그들이 혹여나 눈치를 못 챈다면 나는 꼬리로 철창을 찰싹 때려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얘가 왜 이래? 억지로 꼬리를 흔들려다 보니까 엉덩이에 쥐가 날 것 같더군요. 흔들기보다 휘두르기에 가까웠지만 나름대로 효과는 있었습니다. 지친 기색으로 퇴근을 하던 감자부인이 개 껌을 주기 시작한 것이죠.

  다음은 심부름이었습니다. 심부름이라 하니 그들의 종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습니다. 나의 지성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 정도랄까요? 우선 한 쪽 눈으로 인간들의 덜떨어진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감자사장은 리모컨을 소파 쿠션 밑에 넣어두고 한참을 찾는 멍청한 행위를 즐겨했습니다. 사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케이지를 열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열고 나가지 않은 이유는 다시 완벽하게 닫을 수 없고, 그것이 들켰을 때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걸 감안하고 일을 저질렀습니다. 아씨, 어디 갔어. 멍청한 인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잽싸게 리모컨을 물어와 그 더러운 발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어떻게 나온 거야? 그보다, 어떻게 알아들은 거고. 감자사장은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간식상자에서 소시지를 꺼내왔습니다. 그런 식으로 떨어진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거나 안방에 있던 잡지를 갖다 주면서 내 영리함을 입증했습니다. 가루, 리모컨. 감자사장의 종이 된 느낌이라 찝찝했지만 그 보상으로 자기 전까지 비좁은 케이지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꼬리 흔들기와 심부름은 TV속에 개들이 으레 하던 것들이었으니 이제 그 이상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나는 감자가족을 더더욱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간만에 감자부인이 일찍 퇴근을 하여 다 같이 저녁을 먹는 날,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감자가족들이 의자에 앉자, 나도 의자를 밟고 단숨에 식탁까지 올라갔습니다. 감자는 시금치를 싫어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식탁 밖으로 밀어버렸습니다. 나는 실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감자사장의 국은 넘칠 정도였기 때문에 혀가 데일 각오로 핥아댔고 갈비를 좋아하는 감자부인을 위해 감자 쪽에 놓인 갈비를 물어다 그녀의 밥 위에 올려놨습니다. 모든 일을 끝마친 후 나는 자랑스럽게 밥그릇을 물어와 식탁 위에 올려놨습니다. 그 결과, 다시 케이지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개새끼가 오냐오냐하니까 지가 인간인줄 알아. 여러모로 억울한 처우였습니다. 기껏 수발을 들어줬더니. 감자부부는 새로운 주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내가 맛이 간 이유에 대해 떠들었습니다. 그것은 크게 중성화로 인한 호르몬 장애 또는 성모 마리아상을 깨뜨려서 부정을 탄 것으로 축약이 되었죠. 어찌됐건 호르몬 장애를 주장한 감자부인이 논쟁에서 승리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의사는 내 몸을 뒤적거리더니 부인에게 어려운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심장병과 엄청난 크기의 숫자뿐이었습니다. 그 숫자는 너무 커서 부인의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들었죠. 그날 밤, 아침이 두려워졌습니다. 나는 케이지에서 뛰쳐나와 감자의 침대에 올라갔습니다. 감자는 곰 인형을 안고 자고 있었죠. 나는 곰 인형을 물어뜯었습니다. 녀석의 단추 눈을 모조리 떼어버리고 입가에는 구멍을 냈습니다. 그리고 대신 감자의 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눈을 감자 왼쪽 눈에서 희미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감자가 깨어났습니다. 녀석은 벌떡 일어나더니 찢어진 곰 인형을 들고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감자에게서 감자사장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꽃향기를 인위적으로 재현한 냄새가. 참으로 인간 같은 냄새가. 김가루라니. 나는 그들의 가족일리가 없었습니다. 나가.

  그날은 웬일로 감자부부가 손을 맞잡는 날이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케이지를 들었습니다. 안에는 내가 누워있었죠. 현관문 앞에는 얼굴이 엉망인 곰 인형을 든 채 감자가 서있었습니다. 나는 반년 만에 검은 차를 다시 타게 되었습니다. 창문으로 빛나는 빌딩들이 빠르게 스쳐갔죠. 그들은 회색빛 컨테이너 건물 앞에 케이지를 내려놓고 떠났습니다. 한겨울의 차가운 밤공기가 온몸을 찔러댔습니다. 검은 차를 다시 쫓아가고 싶었지만 몸이 너무 무거웠고, 짖고 싶어도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가 계속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죠. 나는 그것을 감자가족의 불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색 페인트로 칠한 바닥 위에 3층으로 쌓인 케이지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곳. 그 안에서 주인을 잃은, 아니 주인에게 버려진 수백 마리의 개들이 수백 가지의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연신 외쳐대는 곳. 개똥 냄새 풀풀 나는 공기가 그 외침으로 진동하는 곳. 그곳은 유기견 보호소였습니다. 나는 또다시 비좁은 케이지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개도 함께였죠. 14살짜리 쭈글쭈글한 퍼그가 내 룸메이트였습니다. 퍼그는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를 짖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짖을 때마다 목걸이가 달랑거렸는데 거기에는 초롱이라는 이름과 유성펜으로 덧칠해진 연락처가 적혀있었습니다. 아침에 버려진 개들을 깨우는 것은 퍼그의 울음소리였고 그 소리를 필두로 개들의 절규가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의 개는 철창을 긁고 짖으며 하루를 때웠고, 나머지 녀석들은 케이지 구석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책을 했죠. 정말이지 미련한 것들이었습니다. 나는 개들이 우스웠습니다. 그런다고 주인이 돌아오나. 가루를 목 놓아 외친다 해도 감자가 다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 이름은 버려진 이름이었습니다. 멍청한 녀석들. 개들은 인간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설령 진짜 사랑을 받았다한들 그것이 영원할 리는 만무했습니다. 인간들의 사랑은 탈부착이 가능한 것이니까. 그것은 원할 때 붙였다가 싫증날 때 가차 없이 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개들이 지녔다가 떼어진 이름처럼.

  늙은 남자의 말이 맞았습니다. 나는 오래 살 운명이 아니었습니다. 벌써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락사. 초콜릿처럼 달콤한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초콜릿처럼 개를 죽게 만들죠. 나는 안락사를 기다렸습니다. 인간들에게 입양 당하고 또다시 버려질 바에야 죽는 것이 나았습니다. 이곳에 남겨진 지 10일이 지나면 안락사를 당한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10일 동안 입양을 피해야 했습니다. 요령은 간단합니다. 나는 원체 허약한 데다 사장에게 맞으면서 몸에 문제가 생긴 상태였지만 그것보다 더 과장해서 아픈 척을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애꾸에다가 잡종이라 수요가 많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나는 시체처럼 배를 까고 누워서는 한쪽 눈으로 천장을 공허하게 응시했습니다. 그리고 몸을 간헐적으로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6번이던 시절, 죽어가는 곤충을 보며 배운 것이었습니다.

  과연 인간들이란 종잡을 수 없는 족속이었습니다. 한 젊은 남녀가 경기를 일으키는 내가 어지간히 불쌍해 보였는지 입양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케이지 문이 열리고 위생장갑을 낀 손이 들어와 나를 붙잡자 옆에 있던 퍼그가 처음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 오늘이 9일 차야. 그는 커다란 눈을 글썽이며 대신 가게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개를 선택할 수 있지만 개는 인간을 선택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사흘 만에 보호소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단언컨대, 세바스찬은 인간이 개한테 지을 수 있는 이름 중 최악일 겁니다. 연인은 보호소에서 봤던 내 표정이 영화 주인공과 묘하게 닮았다며 저들끼리 희희낙락거렸습니다. 피아노를 치고 정신 사납게 춤을 추는 영화였죠. 그들은 그 영화를 질리도록 많이 봤는데 주인공이 등장할 때마다 나를 콕콕 찔러댔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집은 서울 중심지 빌라에 있는 투룸이었습니다. 감자네 집보다는 작았지만, 케이지가 없어서 나는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죠. 소파 옆에는 나만의 침대가 생겼고 소리가 나는 공이나 닭인형 같은 장난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무언가 내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치료비는 연인도 감당 못 할 정도였을 겁니다. 동물병원에 들른 그들은 고민하더니 비용이 덜 드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약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약을 먹지 않자 사료에 약을 섞어주기도 했지만 나는 약이 섞인 사료를 모두 소파 밑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연인은 카페를 좋아했습니다. 남자는 언제나 캐러멜마키아토, 여자는 민트초코라떼를 골랐고 그 냄새는 두 인간의 옷과 집에 깊게 스며들어있었습니다. 캐러멜은 언젠가 TV에서 봤던 곰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몸집이 장롱만 한 그는 발도 크고 웃음소리도 컸죠. 나를 챙기는 것은 주로 그가 했습니다. 밥을 가져오는 사람도 장난감을 흔들며 장난을 치는 사람도(물론 나는 그 놀이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간식을 챙겨주는 사람도 캐러멜이었죠. 캐러멜이 장롱이라면 안에 민트가 세 명은 들어갈 것입니다. 그녀는 작고 마른 여자였습니다. 양말을 두 겹씩 신고 다니는 민트는 애인과 있을 때만 나를 살갑게 대해줬습니다. 그녀는 차가운 여자였고 실제로 수족냉증이 있었죠. 캐러멜이 밖으로 나가면 그녀는 방문을 굳게 닫은 채 나에게 전혀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 서늘함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아무리 캐러멜이 살갑게 대하고 민트가 차갑게 대한다 한들 다 똑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질려버리면 가차 없이 버릴 인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방에는 인형이 가득했고 내가 그 중에서 몇 번째로 버려질지 감이 안 왔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들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까이 오면 나는 도망쳤고 산책도 거부했죠. 몸이 점점 둔해졌지만,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다시 간다면 이 인간들은 어떻게든 내 수명을 늘리려 할 것입니다. 기왕이면 튼튼한 장난감이 좋으니까. 그러다 돈이나 힘에 부치면 나를 버리겠지. 차라리 그대로 죽고 싶었습니다. 둘이 만든 세바스찬이란 멍청한 이름에 얽매이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간들의 관계란, 그중에서도 남녀관계란 참 이상합니다. 서로 미워하다가도 어느 순간 화해를 합니다. 실컷 싸우다가도 나를 버릴 때만큼은 손을 잡았던 감자부부처럼 말이죠. 한편으로는 좋아 죽으려다가도 어느 순간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캐러멜과 민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고 못 사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봄이 오자 둘의 관계는 도리어 냉랭해졌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이 줄었고 대화도 드문드문해졌죠. 결국 둘은 언성 높여가며 싸웠고 나는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하룻밤 동안 소파 밑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소파 밑으로 다시 햇살이 비쳤을 때, 거실은 난장판이었고 놀랍게도 집에 남은 것은 민트였습니다.

  그녀는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배달시킨 아이스크림을 가져갈 때와 내게 밥을 줄 때 말고는. 민트는 언제나 민트초코 아이스크림만 시켰습니다. 그것의 냄새를 맡았을 때, 나는 확신을 했습니다. 저걸 먹으면 죽는다고. 그녀와 단둘이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빠른 길을 택하려 쓰레기통을 뒤졌지만, 민트가 아이스크림을 너무 싹싹 긁어먹었기에 실패했습니다. 그녀는 자주 흐느꼈습니다. 아니, 사실 잘 때를 제외하고 흐느끼지 않는 순간이 없었죠. 나를 버리지마. 유기견 보호소에서 개들이 짖어대는 것처럼 듣기 거북한 소리였습니다. 흐느낀다고 다시 돌아올 거면 애초에 떠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짐승인 나도 아는데 인간인 민트가 그걸 모르는 게 우스웠습니다. 거참, 덜떨어진 인간이군.

  캐러멜이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집에는 아직 그의 냄새가 남아있었고 민트는 여전히 흐느꼈습니다. 그녀는 아침에 사료를 푸다가 눈물을 왈칵 흘렸습니다. 세바스찬. 그 이름을 부르더니 별안간 소파에 앉아 얼굴을 쿠션에 파묻었습니다. 이래서 이름은 신중하게 지어야 합니다. 웃자고 지은 이름에 울게 될 줄 그녀는 몰랐겠죠. 한 시간을 그러고 있자 슬슬 그녀가 거슬렸습니다. 소파 한가운데에서 돌덩이처럼 앉은 그녀는 울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보호소에서 움츠린 개들이 하던 것처럼 온갖 자책을 했죠. 나는 민트를 보며 어떤 개를 떠올렸습니다. 혈육에게 버림받고 마루 밑에 숨어 살던 6번이, 유기견 보호소 앞에 케이지 채로 버려진 가루가,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 볼 수 없는 내 자식이. 가슴 속에서 뭔가 저릿한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겨우내 지속되던 심장통과는 다른 것이었죠. 그동안 나도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아무래도 바깥 공기를 안 쐬니 몸이 많이 쇠약해지더군요.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이상한 충동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전혀 나답지 않은 충동이었지만 마음속 무언가에 의해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나는 소파 위로 뛰어 올라가 그녀의 무릎 위로 엎드렸습니다. 무릎은 한겨울의 철제 케이지처럼 차가웠습니다. 민트는 어리둥절하게 나를 쳐다봤습니다. 나도 그녀를 쳐다봤습니다. 무릎이 따뜻해질 때쯤,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정말 뜬금없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산책 갈까?

  인간이란,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날씨는 맑았습니다. 우리는 집 앞의 천변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주위에는 벚꽃이 만개해있었고 바람이 불자 꽃잎이 코 위로 떨어졌습니다. 길 위에는 손을 잡은 연인들이 가득했습니다. 슬리퍼를 끌며 걷던 민트는 캐러멜과의 추억을 떠올리는 듯 멈칫했습니다. 가로등이니 나무니 자질구레한 것들을 보고서도 멈춰 섰죠. 나는 그럴 때마다 거기에다 오줌을 뿌린 후 목줄을 당겼습니다. 그곳의 공기는 집과 달랐습니다. 민트와 캐러멜 냄새뿐 아니라 가지각색의 향기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발밑에는 어린 식물들이 피어날 준비를 했고 옆으로는 조증에 걸린 듯 활개 치는 개들과 그보다 증세가 덜한 주인들이 스쳐 갔습니다. 번잡한 길 위로 따뜻한 공기가 깔렸습니다. 민트의 슬리퍼가 점차 빠르게 움직였고 그녀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집에서 캐러멜의 냄새는 조금씩 사라져갔습니다. 민트는 더 이상 흐느끼지 않았습니다. 가끔 멈칫할 때가 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면 괜찮아졌죠. 이제 그녀는 집 밖으로 자주 나가기 시작했고 저녁마다 함께 산책을 하러 갔습니다. 우리는 제법 궁합이 괜찮았습니다. 그녀는 몸이 차가웠고 나는 몸이 수시로 달아올랐기 때문에 그녀에게 안기면 서로 적당한 체온이 되었습니다. 방에 인형들은 여전히 한 가득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 품에 안겼을 때, 왼쪽 눈에서 뭔가가 보였습니다. 사계절이 공존하는 공원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벚나무와 짙은 녹음이 보였고, 다른 쪽에서는 단풍나무 밑으로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민트와 나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온몸을 짓누르는 통증은 산책하러 나갈 때 줄어들다 돌아올 때 재발했습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자 소파 밑에 있는 약이 섞인 사료가 떠올랐죠. 소파 앞에서 멈춰 서서 그것을 먹는 게 개다운 행동인지 아니면 개답지 못한 행동인지 고민을 했습니다. 천천히 생각해보니 멍청한 고민이었습니다. 나는 소파 밑에 쟁여두었던 사료를 모두 입에 넣었습니다.

 

  그날은 몸이 가벼웠습니다. 민트의 운동화도 가벼워보였습니다. 우리는 그날도 벚꽃이 날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달려본 적 없지만, 이번에는 달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달렸습니다. 민트도 달렸습니다. 아스팔트 도로를 박차고 달려 나갔습니다. 모든 것들이 빠르게 스쳐갔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상쾌한 기분이었죠. 봄바람이 콧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장기들이 몸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듯했습니다. 모든 것이 흐려졌지만 나는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멀쩡했던 오른쪽 눈도 흐리게 보였습니다. 모든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누군가 말을 했지만, 소리가 웅웅 울려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렴풋이 병원 냄새가 났던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은 민트가 날 안고 있다는 것이었죠. 나를 감싼 무언가에서 민트 냄새가 났습니다. 그때 직감했습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을. 심장이 느리게 뛰었습니다. 뛰쳐나올 듯했던 장기들은 이제 더 이상 내 몸의 일부가 아닌 듯이 느껴졌습니다.

  무엇인가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감자녀석이었습니다. 녀석은 멀찍이 서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처음 나를 보았던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나를 안고 있는 민트는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등 위로 떨어졌습니다. 차갑더군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하려 마지막 힘을 쥐어짰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내 작은 성대에 갇혀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번 소리를 뱉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결국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한심한 신음이었습니다. 오직 깨갱거리는 소리만이 내 주둥이에서 나올 뿐이었습니다. 닿고 싶었습니다. 그 말이 닿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영영 전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사랑해.

  민트는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수족냉증치고는 꽤 따뜻하더군요.

 

  민트냄새와 함께 짧았던 삶이 저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신이라면 나를 개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똑똑한 개 말고, 그냥 적당히 똥오줌만 가릴 줄 아는 개로. 조금 조증에 걸려도 좋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을 제대로 사랑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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