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 모 씨(34세)는 “포켓몬빵을 직접 구매하는 데 5만 원 정도 썼고, 번개장터에서 매물을 구매해 띠부띠부씰 159개 중에 70개를 모았다”며 “104개 모은 친구와 중복된 스티커를 교환했고 빵은 따로 밀봉해 놨다가 하나씩 먹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면서 7080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추억 마케팅이 90년대생을 겨냥한 쪽으로 방향 선회가 이뤄지고 있다. 90년대생이 직장인으로서 경제력을 갖춰가고 온라인상에서 주도적 세력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 같은 트렌드는 점차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소비 문화는 어떤 특징을 가지며, 잇따르는 부작용에 대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추억의 포켓몬빵 대란, 옛 추억에 열광하는 소비자들
지난달 종합식품기업 SPC삼립은 지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판매했던 ‘포켓몬스터 빵(이하 포켓몬빵)’을 16년 만에 재출시했다. SPC삼립은 당시 인기 상품이었던 △돌아온 고오스 초코케익 △돌아온 로켓단 초코롤 △피카피카 촉촉치즈케익 △파이리의 화르륵 핫소스팡 등을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지난 1일(금) SPC삼립에 따르면 지난 2월 23일(수) 재출시된 포켓몬빵은 지난달 31일(목)까지 약 840만 개 판매됐다. 편의점 기준 판매가 1,500원으로 계산하면 약 126억 원의 매출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지난 2014년 해태의 ‘허니버터칩’을 넘어선 기록이다. 허니버터칩은 지난 2014년 8월 출시 100일을 앞두고 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바 있다. 편의점 이마트24는 빵 매출이 전주 대비 8배 이상 급증하면서 전체 매출이 3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트24 관계자는 “직전 주 대비 상품군 전체 매출이 30% 이상 증가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포켓몬빵이 나이대가 있는 고객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비교적 어린 고객들에게는 재미있는 마케팅으로 다가간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포켓몬빵의 인기와 함께 스티커를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띠부띠부씰’도 화제가 되고 있다. 포켓몬빵 띠부띠부씰은 빵을 사면 얻을 수 있는 포켓몬스터 스티커로, 당시 소비자들이 포켓몬빵을 사서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챙기는 일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현재 띠부띠부씰은 비인기 포켓몬의 경우 인터넷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1,500원부터 5,000원까지 거래되며, 인기 포켓몬은 ‘당근마켓’에서 5만 5,000원까지 거래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음악·예능도 추억으로 역주행
이처럼 추억을 소비하는 문화는 장난감이나 빵과 같은 상품에만 머무르지 않고 콘텐츠 분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발매된 ‘SG 워너비’의 곡 ‘Timeless’는 지난해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소개되며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이하 MZ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지난 2010년 3월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영상 및 발언들을 MBC가 지난 2019년 하반기부터 유튜브에 공개하고 해당 영상이 알고리즘을 통해 퍼지며 유행을 일으킨 바 있다. 무한도전 편집 영상을 올리는 ‘오분순삭’은 구독자 수 127만 명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중 인기가 많은 영상은 조회수 80만 회 이상을 기록하는 등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가 발표한 지난해 VOD 시청 시간 순위에 따르면 무한도전은 지난해 예능 시청 시간 4위에 오르며 현재 방영하는 프로그램에 밀리지 않는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걱정 없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비하다
전문가들은 품귀 현상이 지속됨에도 포켓몬빵이 꾸준히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MZ세대의 과거에 대한 향수 및 세계관 팬 수요 등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본다. MZ세대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연령대인 데다 결혼이 어려워지는 등의 상황에서 포켓몬빵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향유할 수 있는 일종의 ‘힐링템’이 됐다는 분석이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증강 현실을 활용한 포켓몬 게임 ‘포켓몬 GO’의 연장선으로서, 디즈니와 마블 시리즈처럼 세계관을 구축해 팬덤을 형성한 결과”라며 제조 회사는 과거 다른 유행 과자처럼 무리하게 공급하면 유행이 금방 끝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최대 매출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수급량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과거 포켓몬빵을 좋아하던 연령대가 현재 사회 초년생이 되어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 요인 등 시기적 요인이 존재한다는 의견도 있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포켓몬빵은 지난 1998년에 출시됐을 때도 열풍이었는데 그때 초등학생이었던 소비 연령대가 30대 전후가 되면서 과거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 허니버터칩 등의 대란이 있었던 때보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띠부띠부씰이 사람들의 소통 매개체가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힘든 현실 탓에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한다는 분석도 있다. ‘포켓몬빵 후기’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밈(meme)’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포켓몬빵 출시 당일에는 새벽부터 포켓몬빵 구매를 인증하는 SNS 게시글이 4,000여 건 이상 등록되고, 편의점 앞에서는 일부 소비자들이 포켓몬빵 배송 차량을 기다리는 ‘오픈 런’ 현상까지 일어난 것이다. 유튜브에서는 띠부띠부씰을 개봉하는 ‘언박싱’ 영상이 줄지어 공개되기도 했다.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근 젊은 세대가 겪는 어려움과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들어맞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사람은 현실이 힘들면 자연스럽게 좋았던 옛날이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며 “그 당시 포켓몬빵을 좋아했던 연령대가 이제 사회 초년생이 됐는데 사회에 나가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겪고 나니 상대적으로 걱정이 없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소비 문화의 주체 MZ세대, 그 특징은?
통계청의 ‘MZ세대의 생활환경: 생활비 원천, 주거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기준 MZ세대는 1,629만 9,000명으로 총인구 중 32.5%를 차지했다. 또한, MZ세대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67.2%로, 부모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제 활동 참가율인 13.4%를 추월하며 시장을 선도하는 핵심 경제 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 ‘MZ세대의 생활환경: 생활비 원천, 주거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는 △현재의 행복 추구 △본인 중심 소비 △불필요한 인간관계 지양 등 미래보다 현재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소비 특징을 보였다. 집단보다는 개인, 가격보다는 취향에 소비한다. 또한 소비를 본인 정체성을 정의하는 하나의 행위로 간주하고, 소신대로 결정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덕질하듯 채굴하는 디깅 소비
자신이 선호하는 품목이나 영역에 깊게 파고드는 행위가 관련 제품의 소비로 이어지는 소비 문화인 ‘디깅(digging)’이 MZ세대의 두드러진 소비 트렌드로 나타났다. 채굴이라는 의미의 디깅은 흥미 있는 분야의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하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관련된 음악을 찾아 들어보며 즐긴다는 의미로 사용됐으나 요즘에는 △예술 △식품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며 관련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
디깅 소비의 사례로는 한정판 신발이나 스니커즈를 수집하는 행태가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신발 시장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대외 활동이 위축되며 이전 대비 0.9% 감소한 6조 1,873억 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이로 소비 시장이 위축되는 듯했으나, 지난해 6조 2,426억 원 규모로 지난 2020년 대비 2.3%가 증가한 성장세로 돌아섰다.
차에서 캠핑하는 ‘차박’ 등 필요한 장비를 갖춰야만 하는 취미 용품에도 디깅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발표한 ‘2021년 상반기 중고거래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에만 캠핑 및 차박 용품 거래건은 약 774만 건, 하루 평균 4만 3,000건의 거래가 이뤄졌으며 거래액은 7,766억 원으로 나타났다. 취미 관련 카테고리의 거래량은 123만 건으로 지난 2020년 대비 91% 증가했다.
가치를 구매하는 미닝 아웃 소비
또한 사회적 사치나 특별한 의미를 담은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표현하고 신념을 표출하는 ‘미닝 아웃(meaning out)’이 MZ세대의 소비 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미닝 아웃 소비와 같은 가치 소비는 불매 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적 선행을 베풀거나 친환경적인 기업을 ‘돈쭐’ 내는 문화 역시 포함한다. 돈쭐은 ‘돈으로 혼쭐낸다’는 뜻의 신조어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준 사업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매일경제가 지난해 7월 MZ세대 92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치 소비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신은 가치 소비자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79%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미닝 아웃 소비를 통해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분석됐다. 트렌드 모니터가 MZ세대 923명을 대상으로 한 ‘2020 착한 소비 활동 및 SNS 기부 캠페인 관련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63.4%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해보고 싶어서’라고 응답했다. 또한 전체의 50.9%는 ‘작게나마 이웃을 돕고 싶어서’라고 답했으며 49.8%는 ‘비교적 남을 도울 수 있는 쉬운 방법이라 생각돼서’라고 응답했다. 이는 복수응답을 포함한 결과다.
새로운 소비 트렌드의 이면
MZ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포켓몬빵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전국 곳곳의 편의점에서는 이를 둘러싼 사건·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포켓몬빵 구입을 희망하는 사람이 편의점에서 난동을 부려 경찰 6명이 출동한 사연이 알려졌다. 지난달 23일(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포켓몬빵 때문에 경찰 6명 옴’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 씨에 따르면, 한 손님이 편의점으로부터 포켓몬빵 품절 안내를 받고 “포켓몬빵이 있으면서 숨기는 거 아니냐”라며 난동을 부린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손님은 편의점 물건을 발로 차고 매대를 엎기까지 했으며, 이에 경찰차 2대와 경찰관 6명이 출동했다.
또한 포켓몬빵의 과열된 인기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해고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지난달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포켓몬빵 때문에 알바 잘린 편돌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 B 씨는 예약된 포켓몬빵을 다른 손님에게 팔았다가 해고 조치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점주와 나눈 문자 메시지 일부를 캡처해 올리면서 “손님한테 포켓몬빵을 팔았다고 잘렸다. 이게 맞는 건가”라고 적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포켓몬빵 하나 때문에 이게 말이 되나’ △‘포켓몬빵이 뭐라고 매일 이런 글이 끊이질 않네’ △‘빵 때문에 범죄도 일어나겠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반면, 윤리 의식을 강조한 ‘책임 소비’에 나서는 사람들도 보이고 있다. 포켓몬빵 내 띠부띠부씰만 챙기고 빵은 버린다는 비판이 확산되자 빵 요리법을 서로 알려 주고 중고 플랫폼에서 빵을 무료로 나눔하고 있는 것이다. 다량 구매한 포켓몬빵을 다양한 레시피로 즐기고 인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에는 딸기 크림빵 속에 생딸기와 바나나, 아이스크림을 넣어 먹거나 치즈 케이크 빵을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먹는 등 빵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후기가 넘친다. 한 포켓몬빵 소비자는 “빵을 모두 버리기엔 환경 오염이 걱정되고 양심의 가책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비 트렌드에 따른 부작용을 SNS를 이용해 개선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이 교수는 “MZ세대는 자신의 소비가 가장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탐구한다”며 “빵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을 찾고 또 SNS에 공유함으로써 나 자신과 타인에게 훌륭한 소비자임을 보여주는 것도 즐긴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