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보도 면을 읽고 배준수(정보사회·22)
지난 숭대시보 제1296호에 “주간 부스 참가비에 ‘시선집중’”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다. 이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사전 공지 없이 총학 인스타그램 주간 부스 모집기간 연장 게시글에만 주간 부스 참가비 10만 원을 명시하여 논란이 되었기 때문이다.
19년도까지 대동제 주간부스 참가비가 없었고, 또한 동일한 비품을 제공해주었던 봄축제에서도 주간부스 참가비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비판이 이어질 만하다. 주간 부스 운용 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참가비를 걷는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주간 부스 운용 비용 상승분만을 참가비로 책정하면 되지 않는지이다. 주간 부스 운영 일수가 달라도 참가비는 같은 것에 대한 의문점이 있다.
총학이 이것은 주간부스 이용 독려 사업이 진행되기에 차등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등록금에 축제 관련 비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수익 창출하는 단체에게 소정의 참가비를 거둠으로써 이익을 일정 부분 재분배하고 축제의 전반적인 복지에 운용하려는 취지에서라고 설명한다.
일단 사전 조사로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체험형 부스와 같은 경우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부스는 축제의 완성도와 분위기를 담당하는 곳이므로 경제적 이익을 논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또한 참가비를 10만 원 받음으로써 부스 메뉴판매가가 높아질 수 있고 그로 인해 축제 부스 참여자들의 부담만 높아질 수 있는 점을 고려해야한다.
무엇보다도 부스 지원서에는 단순판매보다, 다양한 컨텐츠 체험으로 학우분들에게 재미를 주는 부스를 지향한다고 쓰여있다. 이것이 과연 총학이 원하는 방향인지 스스로 생각해보면 좋겠다.
I 시사 면을 읽고 이삭(정보사회·17)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근 인기 있었던 드라마다. 나 또한 배우들의 연기력에 감탄하며 재밌게 봤다. 하지만 종영하는 순간에도, 숭대시보 기사를 보기 직전까지도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게 있다. 비장애인의 장애인 연기는 자연스럽게 보면서 왜 장애인 배우에겐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난 장애인 배우를 단 한 명도 알지 못한다. 잠깐 찾아보니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에는 농인과 다운증후군 배우가 출연했었다. 예산 문제나 출연료, 정부의 지원도 물론 장애인 배우 활성화에 필요하지만, 결국은 사회적 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할 거다.
현실은 어떨까? 감히 말하건대, 한국사회 속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최악이라고 본다. 일상 속에서 장애는 유머와 비하의 목적으로 흔히 쓰인다. 심지어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무언가를 못한 사람에게 ‘너 우영우냐?’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언론 보도나 정치인들의 발언에서도 사용되는 장애인 비하/차별 표현은 의도가 어떻든, 그러한 것들이 우리들의 삶에 이미 녹아 있음을 알려준다.
기사에서 예시로 쓰인 유튜브에 쏟아지는 사회 실험들을 보면 사람들은 강조된 장애인의 수동적이고 약자적인 모습을 보며 연민과 동정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지하철 엘리베이터나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같은 공간조차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차지할까. 숭실대입구역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가득해 휠체어를 탄 분 혼자서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걸 본 적이 있다. 물론 장애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지만,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느낀 연민과 동정 같은 감정은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체 인구에서 장애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5%가 넘지만, 실제 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수는 훨씬 적다고 느껴진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동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우리는 그들을 미디어 속의 이미지로만 소비하고 현실에서는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사회와 법이 장애인을 더 주변부로 몰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선량함이라는 가면을 쓴 차별주의자인 것일까?
- 기자명 숭대시보
- 입력 2022.09.27 14:19
- 호수 1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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