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가짜뉴스를 물리치고, 기후변화는 과학적 사실로 인정된다. 대기 중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불소화합물 등) 농도가 높아지면서 온실효과가 증가하는 지구 온난화 현상은 기후변화 중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의 질문은 지금 이 시점에서 왜 기후변화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이다. 지구의 자연환경은 지속해서 변하고 지구의 기후도 계속 변해오고 있다. 즉, 기후변화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은 어느 시기까지는 자연적인 현상이었던 기후변화가 인간의 총체적 개입에 따라 반응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지구의 기후는 예측할 수 없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어권 연구에서 기후변화를 설명하면서 자주 붙은 형용사는 “human-made,” “artificial,” “inventive”라는 단어이다. 기후변화위기는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화학자 폴 크뤼천(Paul Crutzen)은 우리의 시대를 인류세(the Anthropocene)라고 명명하며, 18세기부터 시작된 서구의 산업혁명이 그 시작점이라고 주장한다.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은 1945년 냉전 시대의 무분별한 핵실험의 여파로 대기 중 온실가스량 증가가 가속되었다고 주장한다. 지구시스템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시작점을 찾아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내놓으려 분주한 동안, 다른 지구과학자들은 인류 멸망의 시기를 예언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2 보고서에서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지구 온도상승을 상한 1.5도 내에 묶어 놓지 못하면, 2030년에는 홍수로 인한 15세 미만 사망자는 48,000명 정도라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다. 알 고어(Al Gore)는 2050년이 그 기한이라고 주장한다. 그 기한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면 인류의 미래는 존재할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각자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이러한 예측에도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점은 기후변화위기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것, 인간은 기후변화의 최대 가해자이자, (지구환경이 아니라) 인간이 최대 희생자가 되리라는 것이다.
최근 몇 년동안 지구 거주인들은 기후변화재난의 위험성을 몸소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소수의 환경운동가에 의해 주장되었던 요구사항들은 현재 정부지자체, 대기업사업체, 교육기관에서 주 사업으로 채택되었고, 정치, 경제, 법, 의료, 사회복지, 방위산업분야 등 사회 전 영역에서 주 현안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기후 환경문제 관련 교과목을 개발하고 비교과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전문가 초청 특강의 횟수를 늘리고 있다. 본교 글로벌 통상학과는 <글로벌ESG마켓팅>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고, 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는 <친환경 화학소재 콜로키움>에서 특강을 마련했다. 영어영문학과는 2023년 1학기 교과목개정을 통해 <기후변화와 기후소설> 과목을 제공할 예정이다. <기후변화와 기후소설> 과목에서는 기후변화위기에 관한 지구과학자의 담론을 살펴보고, 인문학적 입장에서 영문학전공자들이 해야 할 일을 탐구한다. 특히 인류세 시대에 등장한 기후소설(Climate Fiction: Cli-Fi)의 현황을 살펴보고 기후소설 등장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논의한다. 많은 지구과학자들의 주장처럼 2050년까지 탄소발생량 넷 제로(Net Zero)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정부나 대기업의 투자보다 일반 시민의 인식 전환으로 인한 시민운동의 힘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생각은 과학자의 숫자에 의해 변화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문화가 움직여야 하고, 소설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환경과학자들은 요구한다. 아미타브 고쉬(Amitav Ghosh)가 주장한 바처럼 지금 우리에겐 문학적 상상력이 가장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