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英雄)’이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이란 어떤 일일까. 나는 국어사전에 막연하게 정의된 영웅의 뜻에 내 나름의 한 문장을 더해본다. 영웅이란 실의(失意)에 빠진 민족에게 꺼지지 않는 용기를 주어 다시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힘의 발판이 되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영웅을 정의하는 방법도 다르고 의미도 다르겠지만 나는 영웅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면 늘 안중근을 떠올린다. 우리의 역사상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 난세의 영웅은 많이 있지만 내가
사람은 등잔 밑이 어둡다.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려고도 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예컨대, 꿈에 그리던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관광객이 만든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올라갔지만 정작 엠파이어스 테이트 빌딩은 볼 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근처에 있는 록펠러 센터의 GE빌딩에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더 몽환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동안 56개국 300여 개 도시를 여행한 나지만 정작 내가 사는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가본 도시를 손에 꼽을 정도다. 가까이 있으니 관심도 없고 언젠가는 갈
루르(Ruhr)지방은 유럽 최대의 광공업 지대여서 그런지 공장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슐레지엔(Schlesien) 지방과 더불어 독일의 ‘굴뚝산업’을 책임졌던 곳의 모습은 이곳저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서독의 수도였던 본(Bonn)을 필두로 도르트문트, 뒤셀도르프, 에센, 오버하우젠 등의 기라성 같은 도시들이 루르 지방에 포진해있다. 철과 석탄은 말한 것도 없고 아연, 구리, 납 등의 광물이 이 지역의 전역(全域)에서 발견되면서 독일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산업혁명의 후발주자였던 독일이 급속도로 영국과 프랑스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
나라의 크기에 비해 스위스에는 유명한 도시들이 워낙 많아서 도시들끼리 용쟁호투(龍爭虎鬪)를 벌이는 것 같다. 네 가지 언어가 사용되는 다언어 국가인 스위스는 지역별, 언어별, 문화별로 도시의 색깔이 모두 달라서 마치 도시열전(都市熱戰)을 보는 것처럼 이채롭다. 취리히, 제네바, 로잔, 루체른, 인터라켄, 루가노, 베른 등 기라성 같은 도시들이 작지만 큰 나라 스위스를 수놓고 있다. 같아 보이지만 세세히 살펴보면 많이 다른 각각의 도시들이 스위스 연방의 깃발 아래 똘똘 뭉쳐있다. 그러나 어감(語感)상 독일의 도시처럼 들리고 때론 프랑
오스트리아의 언어는 독일어이지만 스스로를 독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일의 성(姓)을 가진 사람도 참 많지만 독일인이 아닌 ‘오스트리아인’임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은 조국을 묻는 질문 자체에 불쾌함을 표시한다. 예컨대, 한국 사람과 똑같이 생긴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나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답을 듣는 상황과 비슷하다. 현재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모국(母國)의 의미는 누구에게나 큰 것이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모국에 대한 자부심은 참으로 대한 것이어서 영화에서도 잘 묘사된다. 나의 ‘명
고베는 일본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잘 알려진 후쿠오카나 교토가 더 큰 도시처럼 느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베의 활기참을 직접 경험하고 온 후에는 이런 사실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아직도 고베는 대지진으로 기억된다. 1995년 1월 17일에 발생한 진도 7.2의 강진으로 무려 6천 3백여 명이 사망했다. 자연 재해 앞에서 인간이 자랑하는 과학기술의 견고함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이 사건을 보고 절감했다. 고베의 아름다움은 잊혀지고 ‘대지진’은 도시의 브랜드가 된 것 같았다. 일본 제3의 무역항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검정색의 큰 눈동자에 나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나의 모습을 드리운 눈동자는 미소를 내뿜는다.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나. 이렇게 환한 미소는 여행 전에 마무리하고 오지 못한 일들에 대한 걱정이며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내가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라는 염려를 말끔히 날려준다. 타인의 잡념마저 날려주는 이런 미소는 어떻게 하면 지을 수 있을까. 스리랑카는 진정한 미소의 나라다. 동남아시아라고 부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서남아시아에 포함시키기도 좀 그렇다. 얼마 전 시작한 여행 블로그에 그냥 ‘미소의 나라’라
당나귀와 개, 고양이와 닭이 도시의 음악대가 되기 위해 여행길을 떠나는 동화 는 어렸을 때 한번쯤은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동물을 의인화하여 많은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 작가인 ‘그림 형제(Brüder Grimm)’는 주인에게 충성을 바쳐 일하다가 이용가치가 없어져 버려진 사람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하층계급의 애환을 동물을 통해 풍자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물이 등장하는 만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뮤지컬 버전에는 해학적인 대사들로만
어느덧 이탈리아 음식은 외식메뉴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내 스스로 가 한 달에 최소한 몇 번씩은 이탈리 아 음식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종류도 늘어나서 뇨키(Gnocchi)와 라자냐 (Lasagna) 정도는 누구나 아는 음식이 되었고, 깔조네(Calzone)나 브루스 케타(Bruschetta)도 꽤 보편화된 메뉴가 되었다. 이탈리아에 처음 갔을 때, ‘Gnocchi’를 ‘그누치’라고 읽었던 기억이 새로울 뿐이다. 메뉴를 가리키며 그 누치를 연발하는 나를 보며 식당 종업원이 재미있는 표정으로 나를 바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하롱베이는 중국의 꾸이린(桂林)을 바다 위에 옮겨 놓은 듯한 풍광(風光)을 자랑한다. 망망대해 위에 펼쳐진 기암괴석들의 자태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배를 난파시켰다는 마녀 사이렌의 전설보다 더 몽환적이다. 사이렌이 소리로 유혹하였다면 이곳 하롱베이의 크고 작은 섬들은 시각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이런 서글픈 통계는 마땅히 없어야 하겠지만, 하롱베이를 바라보다 바다 위로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람들은 매년 몇 명 이나 될는지. 사람은 극단적인 기쁨이나 아름다움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말까지 (Das Kapital)은 금서(禁書)였다. 이 책을 읽으면 마치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군사정권은 호들갑을 떨었고, 인쇄와 출판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군사정권 하에서의 교육은 모든 것을 이분법(二分法)으로 나누어 사상을 통제하는 방식을 취하였는데, 예컨대, 자본주의의 적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라는 식으로 가르쳤다. 그런 암울한 시절을 겪다 보니 아직도 자본주의의 반대말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로 답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참 많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망치는 것은 사회주의
체코의 프라하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와 더불어 동유럽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다. 동유럽을 여행했다는 사람이 이 두 도시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코끼리의 발톱을 만지면서 코끼리가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는 압도적인 아우라로 동유럽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도 미도(美都)로 통한다. 그러나 큰 나무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들풀 같은 곳도 많다. 큰 나무가 태양을 독점하며 계속 그 잎사귀를 뻗어나갈 때 들풀은 은은한 향기를 발하며 소리 없이 그 자리에 존재한다. 나는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지만 규모 면에서 프라하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도시 ‘브르노(Brno)’ 에 세 번이나 갔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의
일본의 오천엔 지폐에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가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오만 원 지폐에는 한국 사람이면 모두가 동의하는 위대한 어머니 신사임당이 있다. 신사임당은 안견(安堅)에 필적하는 화가, 그리고 문인, 수필가로도 그 명성이 대단하지만 오만원권의 주인공에 선정된 이유는 바로 ‘어머니’라는 이름에 방점을 찍었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나 소설가는 직업이 될 수 있지만 어머니는 직업이 아니다. 어머니는 그 자체가 위대한 역할이고 존재다. 일본의 최고액권인 만엔 지폐에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지(福澤諭吉)가 들어가 있는데 반해, 한국의 최고액권에 어머니의 사표(師表)인 신사임당이 등장한 것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하물며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李珥)
작년부터 심각해진 미국과 북한의 설전(舌戰)은 급기야 핵전쟁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의 몇몇 도시에서는 벌써 시민들에게 전쟁 시 대피요령을 알리고 있다니 시쳇말로 ‘멘붕’이다. 일본이 가진 기록 중에서 가장 영예롭지 못한 것은 원폭으로 전쟁에서 패망한 국가라는 오명일 것이다. 미국은 히로시마에는 ‘Little Boy’라는 이름의, 그리고 이 도시에는 ‘Fat Man’이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1945년 인간에게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했던 미국의 최종 의사결정자는 정말 큰 범죄자다. 작금에 횡행하고 있는 핵전쟁에 대한 괴담 속에서 그 의미가 남다른 도시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한파가 계속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내복을 입지 않고 다녀도 충분할 만큼 남국의 기후는 포근할 정도였다. 재미있는
나는 독일이 좋다. 독일을 좋아하다보니 전공도 아닌 독일어 수업을 12학점이나 수강했다. 지금도 독일 여행이 다른 나라보다 수월한 이유는 그 때 익혔던 독일어가 크게 한몫하기 때문이다. 독어 강독 시간에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을 읽어나가면서 권력자들의 사악한 행태에 경악(驚愕)했었다. 국가에 순응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교육받았던 내게 브레히트의 작품들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마르크스주의자로 낙인찍혀 조국인 독일에서 덴마크로 망명하고, 미국에서도 도망쳐야 했던 브레히트는 아직도 나에게는 괴테와 실러 이상의 작가다. 성인이 된 후 독일맥주 마니아가 되고 독일 사람들의 정확함에 감동받기 훨씬 전부터 난 독일을 동경했었다. 단명(短命)했던 나치의 독일이 아닌 나에
중화사상(中華思想)은 중국인의 자부심을 일컫는 말이지만 점점 좁아져가는 지구촌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참으로 어리석게 들리는 말이다. 난 중국 전문가가 아니라서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다른 뜻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한때나마 중국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을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으로 매도했던 것은이기적이고 무지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자신들과 다르면 모두 오랑캐가 되는 것인가. 특히 삼국지의 제갈량과 인연이 깊은 남만은 야만적인 식생활을 즐기는 미개한 존재들로 묘사되었다. 지금의 운남성을 포함한 인도차이나 반도 북쪽이 남만 지역이라고 하면 중국을 모질게 괴롭혔던 베트남의 북부가 포함될지도 모르겠다. 베트남은 송(宋), 원(元), 청(淸)왕조의 침입을 당당히 물리쳤고, 중
1981년 9월 30일 고(故)사마란치(Samaranch) IOC 위원장의 입을 한국인들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단상에 올라 맑은 스페인어 어조로 쎄울(Seúl)을 발음했을 때,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면 한반도는 흔들렸다. 전 국민은 환호했고 언론은 하루 종일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가 된 것을 찬양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법인지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14, 2, 1이 각인되어있다. 대한민국은 근대 올림픽을 개최한 열네 번째 국가가 되었으며,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국가,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첫 번째 국가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