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김성훈(영문·02) 동문 치열한 힙합세계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고자 하는 진정한 래퍼 술제이, 거친 랩을 하면서도 그 안에 문학적 감성을 담을 줄 아는 그는 랩과 음악, 예술을 사랑한다. 언제나 살아남는 MC로 기억되기를 소망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힙합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힙합이라는 장르 자체를 잘 몰랐어요.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안나는데 서태지의 라는 노래를 TV에서 처음 듣고 ̒와 이런 음악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랩 음악들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죠.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면 사람들 앞에서 장기자랑으로 랩을 하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2002년도에 숭실대에 입학하고 흑인 음악 동아리
“정상적인 사람이 나와서 정상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뭐 하러 소설을 읽나요?” 일상의 틀에 반발하고 날선 문장을 던진다. 그러나 서정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풀밭 위의 돼지』 『숨김없이 남김없이』, 『포주 이야기』 등을 펴낸 소설가 김태용(문예창작·00) 동문이다. 그에게 문학에 대한 길을 물었다. 숭실에서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스물일곱 살에 대학에 왔어요. 그땐, 지금보다 훨씬 어두웠던 것 같아요. 안절부절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많이 보수적이었어요. ‘나는 이제 끝났구나. 빨리 글 써서 등단해야겠다.’ 이런 조급한 욕심이 들었죠. 악착같이 뭐든 다 가지려고 했고, 날이 서 있는 상태라 종종 문학에 관해 선배들과 싸우기도 했어요. 문학
오는 10일(금)은 개교 117주년이자 숭실이 서울에서 재건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서울에서 재건됐고, 현재도 서울에 위치하고 있지만 우리 숭실의 뿌리는 평양에 있다.평양 을 그리워하지만 찾아갈 수 없고 사진으로만 봐야하는 숭실의 역사는 아픈 분단의 역사와도 비슷하다. 이 아픔에 공감하며 평양에 수없이 방문해 본교와 평양의 교류를 위해 힘써온 산업정보시스템공학과 조문수(산업정보·79)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울 숭실과 평양을 잇다 평양에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몇 번이나 다녀오셨나요? 2007년도에 본교 학생처장을 역임했는데, 그 해 3월에 북한청소년축구단 선수들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본교 축구부원들과 제주도에서 친선경기를 갖도록 했어요. 경기가 끝나
어린 아이들은 스케치북에 자신의 감정을 담고, 의 아름다운 연인들은 스케치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예술가들은 일생일대의 대작을 스케치북에 남겼지만, 김영준 작가의 스케치북은 아직 진행형이다. 작가의 이름으로 그는 스케치북에 어떤 그림들을 남겼을까? 부터 까지 김영준 동문(문예창작·06)의 작가로서의 삶이 담긴 스케치북을 지금부터 감상해보자. 대학시절부터 방송작가가 되고 싶으셨어요? 원래 선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아프리카에 가서 애들 밥 먹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신학대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목사님과 제 주변 분들이 “외길로 가면 신학을 할 수 없는 세상이다.”라고 하셔서 고민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수능에서 수리영역 점수가 잘 나온 거예요
죽부인 표면에 반복되는 삼각형과 육각형을 건축물에 적용하면 어떤 구조물이 완성될까? 죽부인과 건축, 아무리 생각해도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지만 본교 건축학부 학생들이 구조물에 죽부인을 적용해 지난 9월 3일(수) 제10회 서울건축구조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그 주인공인 한태호(건축·4), 조성은(건축·2), 최보람(건축·2) 학우를 만나 경진대회 준비과정과 수상소감을 들어보자. 수상 소감이 어때요? 최보람(이하 최): 상을 받더라도 장려상 정도로 예상했는데 금상을 수상해서 뜻밖이었어요. 생각보다 팀워크도 잘 맞고 의견조율이 잘 돼서 재미있었습니다. 다음에도 지금 팀원과 같이 대회에 참여하고 싶어요. 조성은(이하 조): 이런 대회에 참여하려
2014년 9월 15일 월요일 5지난 8월 대학발전기금으로 1억 원을 쾌척한 동문이 있다. 숭실총동문회 부 회장을 역임하면서 꾸준히 학교 발전을 위해 기금을 부여해온 박경대 동문(영문·56). 1956년 돌로 지어진 2층 건물에서 공부하며 숭실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던 학생이 서울 숭실 60주년을 맞이해 거액의 발전기금을 기부하게 됐다. 서울 숭실 제2기 졸업생 박경대 동문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뜨거운 애교심을 확인하고 숭실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다져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교육자의 삶을 사셨다고요. 제가 어렸을때 페스탈로치 전기를 읽고 평생을 교육자로서 살기로 결심했어요. 이북에서 1947년부터 1년간 인민학교 교사로 근무했는데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어요. 그래서
세계 최대 규모의 학생 소프트웨어 경진 대회인 ‘2014 이매진컵’(2014 Imagine Cup)에서 당당히 2위에 입상한 정서진(미디어·4) 학생. 햇볕만큼이나 강렬했던 그녀를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4 이매진컵, 어떤 대회인가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학생 소프트웨어 경진대회예요. 시애틀에서 진행되는데 이번이 2회 대회예요. 작품 주제는 자유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각 국가마다 1팀씩 나와 경쟁하는 대회죠. 분야로는 이노베이션, 시티즌십, 게임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게임분야에만 출전한 건가요? 국가대표선발전에서 각 분야 1위 팀을 뽑아요. 그 후 1위 팀들이 다시 경쟁해 최종 국가대표팀을 뽑죠.
같은 장애인이라 그들을 돌볼 수 있었다. 같은 장애인이라 그들의 가슴 속 깊은 곳 까지 어루만질 수 있었다. 오늘도 섬김의 리더쉽으로 그들을 섬기고 있는 한국장애인녹색재단 정원석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애인들을 위해 굉장히 많은 일을 하십니다. 장애인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요? 사실 처음부터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장애인들과 같이 일을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비장애인들 속에 섞여 있는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멀쩡한 사람들 옆에 목발을 짚고 있는 제가 보이기 시작했죠. 그러자 “내가 장애인인데, 내가 장애인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장애인을 위해 일을 해야
대학교 3학년, 책상 앞에서 취업을 준비하기에도 빠듯한 시기에 전 세계를 혼자 힘으로 여행한 학생이 있다. 빈손으로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을 누비고, 세계 모든 대륙을 밟은 유현덕(정통전·4) 학생은 지난 2월, 2년 간의 세계 일주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특별한 여행 후일담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여행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들어보자. 세계 일주, 국내 무전여행 등 여행을 많이 다니셨어요. 여행을 좋아하시나요? 글쎄요. 꾸준히 동경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여행 관련 서적을 좋아했고요. 제 생애 첫 여행은 친구와 4박 5일 동안 상해를 다녀온 것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여행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지 않았는데, 상해에서 제 안의 여행에 대한 열망을 찾게 된 것 같아
소중한 대학생활, 공부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을 찾고 있던 그에게 봉사활동은 큰 동기부여가 됐다. 봉사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배움을 얻었던 최재빈 학생은 지난 3월,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봉사자’ 표창을 수여받았다. 그는 정통전 4학년을 재학중이다. 연애하고 오락을 즐기느라 바쁜 청춘 20대에 그는 봉사를 선택했다. 그의 인생에서 봉사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학교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방법과 그것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자. 봉사활동 345시간이요? 1년 동안 거의 하루에 한 시간씩 한 셈이네요. 서울시 동행 프로젝트(이하 동행)를 진행하면서 345시간의 봉사활동을 했어요. 처음에는 동행에 참여해 멘토-멘티로 봉사활동을 시작했어요. 지난 겨울방학에 캄
숭실대학교와 중앙일보의 매거진 M이 공동으로 주최한 ‘내 멋대로 현실의 발견’ 영상 페스티벌에서 ‘하소연’(김명환, 오성규, 전지웅, 박정현)이 매거진 M상을 받았다. 과거 본교 인터넷 방송국 ‘씨즌넷’에서 활동했던 국원들이 모여 영상을 제작해오던 실력을 선보인 ‘하소연’,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4학년의 고민거리와 그의 시선을 통한 개개인의 고민을 잘 표현해 준 작품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졸업을 앞둔 상황이고, 씨즌넷 활동을 마쳤잖아요. 어떻게 다시 모이게 됐나요? 전지웅 학생(이하 전지웅): 공모전 소식이 작품발표 며칠 전에 올라와서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고, 10일 이내에 작품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이 모였어요.
명문대를 졸업한 그는 골방 속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에 몰두했다.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홀로걷기를 10년. 게임학회 회장 자리에 오른 그는 현재 게임산업 중심에 서있으며, 스토리텔링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항상 자신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던 이재홍(전자공학·78)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사는 전자공학, 석사는 국어국문학, 박사는 문화학.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세 전공을 수료하셨어요. 고등학교 때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어요. 당시 문예반을 하면서 교지도 만들고 대학교에서 주관하는 백일장도 많이 나갔어요. 나중에는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은 공대에 진학하길 원하셨고 결국 숭실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부딪치려 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러나 당장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도 망설임 없이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이가 있다. 본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성악을 시작한 그는 긴 세월의 고통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다. 애벌레가 긴 인고의 시간을 지나 나비가 되듯이 그는 실패도, 시련도 수없이 겪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서 자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김민석(수학·86) 동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수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성악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학교 3학년 때, 1년 내내 수학 시험에서 계속 만점을 받았어요. 그 전에는 수학을 잘하는 편이
3년간 학교에서 ‘금융학’이라는 공부를 해 왔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 지식이 어느 정도에 있고 공부를 올바르게 해온 건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대학에 입학해 지금까지 제대로 공부해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 학교 금융학부에 입학해 3년 동안 금융 공부에 열중하던 세 남자가 제대로 일을 냈다. 지난달 13일(목) 열린 ‘전국 대학생 증권·파생상품 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본교 어벤쳐스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회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서성진 학생(이하 서): 지난 학기에 김범 교수님이 강의하셨던 ‘채권분석론’과 ‘금융리스크관리’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에서 교수님이 ‘전국 대학생 증권·파생상품 경시대회’ 출전을 팀 프로젝트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 뭉쳐서 꿋꿋하게 경기를 해냈다. 추운 빙판위에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하는 이 운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날만 기다려 왔다. 그리고 2014소치 동계 올림픽,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컬링 선수들이 출전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 컬링열풍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는 본교 컬링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처음 컬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중학교 때 “컬링이라는 종목이 있는데 이런 운동 한 번 해 보는 게 어떠냐.”라는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경기장에 가서 직접 본 후, 컬링 경기에 매력을 느껴 시작하게 됐어요. 학교에 아이스링크가 없는데 훈련은 주로 어디에서 하시나요? 태릉에
‘8년
‘자신의 몸도 불편한데, 4년간 숭실에서 자신보다 더 불편한 학생들을 위해 봉사해온 학우가 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근로·방중 해외봉사·베어드봉사단·학과 봉사 등 대학생활 동안 계속해서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해 온 최강우(사회복지학부·09) 군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사회복지학부를 졸업하셨는데, 원래부터 봉사에 뜻이 있으셨나요? 저는 원래 사회복지학부가 아니었어요. 대학에 입학할 당시에는 윤리나 철학 분야에 흥미가있어서 철학과로 입학을 했죠. 그런데 학교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접하면서 봉사가성격에 알맞다고 생각했고, 마침 철학에 대한 흥미도 떨어졌던 터라 1학년이 끝나고 사회복지학부로 전과하게 됐어요. 학교에서 어떤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궁
취업난의 한파가 거세게 불고 있는 대학가, 너도나도 대기업 취업을 원하는 상황에서 취업을 위한 스펙요건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 자신만의 특별한 스펙으로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한 이가 있다. 최지훈(기계‧08)군은 자작 자동차 학회 활동을 통해 현대자동차 그룹의 자동차광 전형을 통과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로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이뤄낸 그를 만나 보자. 졸업 소감은 어때요? 4년 동안 학생으로 살면서 한 번도 장학금을 받은 적이 없어요. 학과 근로나 아르바이트도 못했죠. 학비를 모두 부모님께 의지했는데 그러다 보니 항상 마음이 무겁고 부담이 컸어요. 졸업을 하니 그 부담을 내려놓은 것 같아요. 이제는 부모님께 그동안 받은 지원을 보답하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대학 생활 7년을 통틀어 15개 국가를 여행한 글로벌한 청년이 있다. 이집트에서 권총 강도를 만난 사건부터 터키에서 가이드를 한 경험까지, 지난 7년간의 대학 생활을 다사다난하게 보낸 윤석원(언론홍보‧07)군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군대에서 운전병을 했을 때 정훈공보부(군대에서 언론보도, 선전, 선전영화 제작, 인쇄, 정기간행물 및 방송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는 기관)에서 복무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전쟁이나 국제 분쟁을 보도하는 일에 관심이 생겼어요. 어렸을 때부터 전쟁과 관련된 영화를 좋아했거든요. 전쟁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것이 있잖아요. 전쟁에 나가는 주인공들은 총알이 다 비껴나가고, 아름다운